"Unti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Eph 4:13]

AM은 성경강해와 큐티자료의 보급을 통해 여러분의 매일의 삶이
말씀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돕고자합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AM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은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Q & A

  • 기독교가 약속한 평안의 특징 by Charles Spurgeon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평안이 있다. 이를테면 무관심을 설파한 스토아학파를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무감각의 평안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비법은 쉽게 이해될 수 있으며 지각을 뛰어넘지 않는다.

    또한 많은 아메리칸 인디언은 가장 위대한 스토아학파 못지않게 무감각하며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능가한다. 그들은 화살에 찔리거나 불에 타도 신음 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완전히 통제해서 고통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스토이즘을 가르치지 않고,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무감각이 아니라 부드러움을 추구한다. 다른 이들이 추구하는 평안은 세상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얄팍한 평안이다. 그들은 모든 걱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민거리를 술잔에 띄우거나 웃어넘기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그들의 영혼을 집어삼키는 순간에도, 유흥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식으로 시련을 극복하지 않는다. 우리의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여기에는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분명한 근거가 있다.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빚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빚을 다 갚았다면 그때야 비로소 평안이 찾아드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가져다주는 논리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그런데도 우리가 평안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평안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그를 위해 다스리신다면, 평안해야하지 않을까?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영원한 죽음의 위협이 없으며, 영광스러운 부활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 가운데 빛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평안이 없겠는가?

    그가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그의 행복을 이성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정도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평안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비웃는다.

    [출처] 예수가 주는 평안 / 찰스 스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