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Eph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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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AM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은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Q & A

  • 복음에 나타난 약함을 통한 능력 by John Stott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은 전달하는 방식을 묻는 것입니다. 1세기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이 질문을 던지면 바로 답이 튀어나왔습니다. 전달할 것은 철학이었고 전달하는 방법은 수사학이었습니다. 즉 말씨와 표현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망설임 없이 이 둘을 다 포기했습니다. 바울은 '말의 지혜'로 복음을 선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17절). 인간의 철학 대신 십자가를 전했고, 인간의 수사학 대신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인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18-21절에서, 그리고 22절과 25절에서 계속 반복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21절에서 바울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2-25절에서는 십자가의 미련함과 약함을 통한 능력이라는 주제를 조금 더 풀어 설명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고 결정적인 차이를 설명합니다.

    첫째,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22절). 유대인은 로마군대를 지중해에 몰아넣어 몰살시키고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아줄 정치적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혁명가나 메시아를 자처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확실한 증거를 대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표적을 보여라. 로마군을 이땅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표적을 보여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둘째,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22절). 그리스에는 예전부터 철학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생각의 자유를 신봉했습니다. 그래서 조리 있어 보이기만 하면 새로운 사상과 추측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능력을 구하듯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셋째,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23절). 동사에 주목하십시오. 유대인은 구하고 헬라인들은 찾지만, 그리스도인은 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 말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을 결합시킨 말입니다. 로마군을 이 땅에서 몰아낼 메시아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단 말입니까? 메시아라는 단어는 능력, 영광, 승리를 의미하는 반면, 십자가형을 당한다는 것은 약함, 굴욕, 패배를 의미합니다.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메시지에 다양하게 반응했습니다. 유대인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 군대를 이끄는 군사적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심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약골이 메시아라니 말이 됩니까. 유대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고 모욕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죄를 받고 생을 마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메시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능력을 숭배하는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방인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십자가형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처형 방식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예나 범죄자들과 같은 사회의 쓰레기들이나 당하는 치욕이었습니다. 자유인이나 로마 시민이 십자가형을 당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로마 시민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경우는 없기에 로마 시민에게는 십자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십자가형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을 볼 일도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개념이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24절). 미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25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본문은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적합한 말씀입니다. 1세기에 살던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니체처럼 능력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여전히 거리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설령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구원을 받는 데 이바지할 수는 있다고 자신합니다. 40대에 생을 마감한 캔터베리의 대주교 윌리엄템플은 죽기 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여 구원에 이바지한 요소가 내게 있다면, 그것은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성, 즉 죄뿐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거저 주시는 이 선물을 겸손하게 받아야 합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때 친구에게 이 사실을 설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말솜씨가 좋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구원을 받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가 고래고래 소리쳤습니다. "소름끼치게 싫어! 싫어! 싫다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런 경험을 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교만한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능력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기 힘으로 구원에 이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거만한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지적으로 거만한 사람들에게도 미련한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 철학자 앨프리드 에이어는 기독교를 싫어했고 틈만나면 복음을 모욕했습니다. 놀리실증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언어, 진리, 논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종교 중에 기독교를 최악으로 꼽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 기독교는 원죄와 대속이라는 교리에 의존하는데, 이 교리는 지적으로는 경멸스럽고 도덕적으로는 가당치 않다." 이것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복음입니다. 지적으로 볼 때 경멸스럽고 도덕적으로 볼 때 가당치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바라보는 세상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십자가는 약함이 아니라 능력이고, 미련한 것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와 죄책이라는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문제 혹은 하나님의 딜레마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딜레마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딜레마는 하나님의 성품,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떻게 죄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죄를 심판하고 벌하는 거룩한 성품을 드러낼 것입니까? 어떻게 죄를 심판하는 의로움을 포기하지 않고 죄인들을 용서하는 사랑의 성품을 드러낼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정의로운 하나님이자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우리가 진 빚을 대신 갚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의로우심(롬3:25)과 사랑(5:8)을 모두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로우심과 사랑을 나타내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의 미련함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약함에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