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Eph 4:13]

AM은 성경강해와 큐티자료의 보급을 통해 여러분의 매일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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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AM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은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Q & A

  • 기독교 영향력의 본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모살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3-16)

    누구나 소금과 빛은 익히 알고 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집에 소금과 빛이 있다. 예수님 자신이 어린 시절에 나사렛 집 부엌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소금을 방부제로 사용하는 것과 해가 졌을 때 등불을 켜는 것을 자주 보셨을 것이다. 그분은 그것들이 실제로 유용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지 설명하실 때 이러한 이미지들을 사용하셨다. 당시 그들은 소수였으며, 그분이 만드신 새로운 사회의 최초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 세계에 소금과 빛이 되어야 했다. 그분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놓쳐서는 안될 두 가지 진리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구별되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비스리스도인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두 이미지 모두 두 사회를 별개의 것으로 분리한다. 세상은 어둡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썩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부패를 막아야 한다. 영어 관용어로는, 그것들은 '분필과 치즈처럼' 혹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주요 주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을 위한 백성이 되도록 세상에서 불러 내셨으며, 백성의 소명은 '거룩하게' 혹은 '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분은 백성에게 되풀이해서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거룩함이니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운 독특성을 간직해야 한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빛도 밝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우리가 그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비그리스도인 사회에 스며들어 세상에 깊이 잠겨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세상에 동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기독교적 확신, 가치관, 기준, 생활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 2장에서 언급한 교회의 '이중적 정체성'('거룩함'과 '세속성')이 우리의 배경이다.

    기독교적 거룩함의 '짠맛'과 '밝음'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산상수훈 나머지 부분에 그 답이 있다. 거기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을 본받지 말라"(마6:8). 그 대신에 그분은 우리를 더 큰 의(마음의), 더 넓은 사랑(원수까지도), 더 깊은 헌신(자기 아버지께 오는 자녀의), 더 고상한 야망(먼저 하나님의 통치와 의를 구하는)으로 부르신다.. 그분의 길을 선택하고 다를 때에만 우리의 소금은 짠맛을 유지할 것이고, 우리의 빛은 밝게 비칠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착하고 유익한 증인과 종이 되고, 사회에 건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비그리스도인과 다르지만(혹은 달라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격리되어서는 안된다. 그와 반대로, 그들의 빛은 어둠을 밝혀야 하며, 그들의 소금은 썩어 가는 고기에 스며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을 강하게 거부하는 사회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에는 소금이 가장 좋은 방부제였다. 소금을 생선과 고기에 비벼 넣거나, 생선과 고기를 소금에 담가 놓았다. 그렇게 해서 세균으로 인한 부패를 지연했다. 빛은 훨씬 더 분명한 효과를 발휘한다. 등불을 켜면 어둠은 달아나 버렸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의 부패를 저지하고 악의 어둠을 쫓아 없애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 윌리엄 템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삶과 모든 인간 관계에 달콤함이 배어들게 하는 것"에 대해 썼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비기독교 세계에 좋은 영향을 훨씬 더 미치지 못했는지 궁금해진다. 미국을 예로 들어도 미국의 친구들이 양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미국 기독교에 대해 발표된 통계 수치는 놀랍다.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85퍼센트가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며, 41퍼센트는 자신이 '거듭난 혹은 복음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2005년에는 미국인 성인 중 45퍼센트가 주말에 교회에 출석했다. 여기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특별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그리스도인 군대가 악의 세력을 격퇴하는 데 좀 더 성공하지 못했는가? 미국인 미래학자 톰 사인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극단적 가르침을 희석하고, 그분의 과격한 복음을 생략하는 일을 놀랄 만큼 효율적으로 해 왔다. 그것은 왜 우리가 우리 사회의 도덕에 그처럼 당혹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설명해 준다." 신앙을 고백하는 제자들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제자도의 질과 그들의 전략적인 배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나빠지는 세상에 대해 점잖빼며 자신을 의롭게 여기면서 애통해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폭력, 부정직, 부도덕, 생명에 대한 경시, 물질주의적 탐욕을 비판한다. 우리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라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누가 비난 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말해 보자. 해질녘이 되었을 때 집이 어둡다고 집을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해가 지면 집은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등불이 어디 있는가"다. 마찬가지로 고기가 썩어서 먹지 못하게 되었다고 고기를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세균이 번식하도록 내버려두면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소금이 어디 있는가"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타락하고 그 수준이 하락하여 어두운 밤이나 냄새 나는 생선처럼 되었을 때, 사회를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타락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교회는 어디 있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소금과 빛은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는가?"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어깨를 으쓱하거나, 주먹을 움켜쥐는 것은 순전히 위선이다. 주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어둠과 부패성이 꽉 차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우리의 잘못이며, 우리가 비난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의도와 기대는 우리의 소외감을 극복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직장이나 지역의 어떤 사람들에게 배척당할 수도 있다. 세속 사회는 우리를 관심의 주변으로 밀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을 거부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영향력 있는 활동 범위를 차지하려 애써야 한다. 야망은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다. 하나님의 뜻과 영광에 진정으로 복종한다면, 그러한 야망에 잘못된 점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은 부패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우리의 연약함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분의 은혜로 사회의 세속적 부분에 스며들어, 거기에 그분의 깃발을 꽂고, 사랑과 진리와 선이라는 그분의 기준을 타협 없이 주장하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출처] 현대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존 스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