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Eph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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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AM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은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Q & A

  • 원죄와 자범죄

    일반적으로 죄는 원죄와 자범죄(actual sin)로 구분된다.

    1. 원죄

    모든 사람은 아담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타락 이후에 죄의 상태에서 태어난다. 이 상태를 가리켜 원죄라고 하며, 이것은 인간의 삶을 더럽히는 모든 자범죄들의 내적 뿌리이다. 이 죄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a. 원시적 죄책

    이것은 아담의 죄책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은 우리의 대표로서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죄책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출생하는 상태가 의도적으로 법을 어긴 상태라는 것과, 따라서 우리가 본질상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7세기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현대 자유주의 신학 옹호자들은 모두 원죄가 원시의 죄책을 내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럴지라도 이것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따른 견해이다(롬 5:12-19; 엡 2:3).

    b. 원시적 오염

    아담의 자손들은 그의 죄책을 짊어질 뿐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들의 도덕적 오염을 물려받는다. 그들은 원시의를 박탈당할 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죄에 대한 성향을 갖고 있다. 이 오염은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1) 전적 부패로서.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악해질 수 있는 데까지 악하다거나, 어떤 의미로든 선을 행할 수 없다거나,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을 조금도 지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내면의 부패가 인간 본성의 모든 부분에까지 확대되어 있고, 인간 안에는 영적으로 선한 것,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선한 것이 없고, 다만 도덕적 타락만 있을 뿐임을 뜻한다. 인간의 전적 부패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 소지니주의자들, 초기 아르미니우스주의자에 의해서 부정되지만, 성경에 의해서 분명히 가르쳐진다(요 5:42; 롬 7:18, 23; 8:7; 고후 7:1; 엡 4:18; 딤후 3:2-4; 딛 1:15; 히 3:12).

    2) 전적 무능력으로서. 이 점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죄인이 여전히 자연적인 선과 시민적 선 혹은 시민적 의, 그리고 외면적 종교적 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죄인도 동료 인간들에게 진실한 인정과 감사를 받을 만한, 그리고 심지어 어느 정도는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을 만한 행동을 수행하고 정조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럴지라도 이 행위들을 하나님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는 결핍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이 행위들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행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을 조금이라도 존중해서 행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죄를 좋아하는 근본적 성향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러한 변화를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이 교리에 대해서는 성경적 뒷받침이 풍부하다(요 1:13; 3:5; 6:44; 8:34; 15:4, 5; 롬 7:18, 24; 8:7, 8; 고전 2:14; 고후 3:5; 엡 2:1,8-10; 히 11:6).

    2. 자범죄

    a. 자범죄와 원죄의 차이

    '자범죄'라는 용어는 외적 행위들로 이루어지는 죄를 가리킬 뿐 아니라, 원죄로부터 나오는 고의적인 생각과 의지도 가리킨다. 자범죄는 개인이 물려받은 본성과 성향과 구분되게 수행하는 죄이다. 원죄가 하나라면 자범죄는 여럿이다. 그것은 교만과 시기와 미움과 육욕과 악한 정욕 같은 내면 생활의 죄일 수도 있고, 거짓과 도둑질, 살인, 간음 같은 외면 생활의 죄일 수도 있다. 원죄의 존재는 과거에도 폭넓은 부정을 당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자범죄의 존재는 적어도 일부 의미로는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범죄가 죄책을 형성한다는 생각을 부정하며, 그로써 죄의 진정한 죄성에 눈을 감는다.

    b. 용서받지 못하는 죄

    성경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 즉 죄를 짓고 난 뒤에 마음의 변화가 불가능하고, 기도할 필요도 없는 죄에 관해서 가르치는 구절들이 있다(마 12:31, 32; 막 3:28-30; 눅 12:10; 히 4:4-6; 10:26, 27; 요일 5:16).

    이 죄는 일반적으로 성령을 거스르는 혹은 모독하는 죄로 알려져 있다. 이 죄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서 베푸시는 증거와 확신에 대해서 고의적이면서도 악의적으로 배척하고 중상하고, 미움과 증오로써 그 은혜를 어둠의 임금에게로 돌리는 행위이다. 이 죄를 범하는 사람은 진리에 대해 다소 심오한 지식과, 성령의 내적 조명과, 진리에 대한 지적 확신이 있어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진리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죄 자체는 단순히 진리를 의심하거나 쉽게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의 확신과 양심의 조명을 거슬러서 진리에 모순되게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이유는 그 죄책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능가하기 때문이거나, 이 죄를 지은 사람이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회개를 배제하고, 양심을 무디게 하고, 죄인을 완고하게 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죄를 범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하나님께 대한 노골적인 미움과, 하나님과 신적인 모든 것에 도전하는 태도, 그리고 거룩한 것을 조소하고 비방하기를 즐기는 태도, 자기들의 영혼과 미래의 삶에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를 예상할 수 있다.

    이 죄에 회개가 따르지 않는다는 사살을 감안할 때, 죄를 저지르고서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그것을 염려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출처] 벌코프 조직신학 개론